양화진 Yangwhajin
가을,
양화진에 낙엽이 쌓인다. 낙엽은 거름이 되고 다시 나무로 돌아간다. 한 알의 밀알로 이 땅에서 자신과 자녀들의 삶을 바친 순교자들의 숨결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어져 간다.
신앙생활을 한 지 20년, 난 양화진을 알지 못했다. 양화진을 처음 방문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이 땅을 위해서 순교한 그들 앞에 섰을 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와 “다시 오겠습니다.”라는 말 밖에는... 양화진과의 첫 만남은 내게 그렇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 양화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내게 다가왔던 양화진의 느낌과 감정을...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함께 양화진은 파인더로 들어오고, 그들의 사랑과 숨결이 필름과 CCD에 담겨지기 시작했다. 양화진을 기록한다. 카메라는 공책이 되고 빛은 필기도구가 되어서. 그렇게 양화진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양화진에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처음, 양화진을 찾았을 때 나에게 그들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양화진의 의미를 하나 둘 알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나를 부끄럽게 했고, 카메라를 들게 했다. 양화진의 역사에 대해 완벽하게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분명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섬김과 헌신이 오늘 내 삶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때인가 무덤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나도 한 때는 그곳에 그렇게 서 있었소.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을 위해 살고자 이 땅을 밟았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계시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
그들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일하다 잠들었다. 왜 이곳, 우리 나라에 왔을까? 선지자 이사야의 고백이 그들의 고백이 되었을 것이다.
“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Here am I, Send me."
양화진에 낙엽이 쌓인다. 낙엽은 거름이 되고 다시 나무로 돌아간다. 한 알의 밀알로 이 땅에서 자신과 자녀들의 삶을 바친 순교자들의 숨결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어져 간다.
신앙생활을 한 지 20년, 난 양화진을 알지 못했다. 양화진을 처음 방문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이 땅을 위해서 순교한 그들 앞에 섰을 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와 “다시 오겠습니다.”라는 말 밖에는... 양화진과의 첫 만남은 내게 그렇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 양화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내게 다가왔던 양화진의 느낌과 감정을...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함께 양화진은 파인더로 들어오고, 그들의 사랑과 숨결이 필름과 CCD에 담겨지기 시작했다. 양화진을 기록한다. 카메라는 공책이 되고 빛은 필기도구가 되어서. 그렇게 양화진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양화진에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처음, 양화진을 찾았을 때 나에게 그들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양화진의 의미를 하나 둘 알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나를 부끄럽게 했고, 카메라를 들게 했다. 양화진의 역사에 대해 완벽하게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분명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섬김과 헌신이 오늘 내 삶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때인가 무덤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나도 한 때는 그곳에 그렇게 서 있었소.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을 위해 살고자 이 땅을 밟았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계시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
그들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일하다 잠들었다. 왜 이곳, 우리 나라에 왔을까? 선지자 이사야의 고백이 그들의 고백이 되었을 것이다.
“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Here am I, Send me."